누구나 한번쯤 번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난 일상은 쉬이 그려지지 않고, 대부분 도시에 머문다. 김미리 작가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자신만의 삶을 고안했다. 내게 맞는 일상, 내가 원하는 삶은 끊임없이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발견된다.
도시 한가운데에 머물다 보면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빼곡한 콘크리트 외벽 탓에 계절의 흐름을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다. 반면 자연은 날씨에 맞춰 부지런히 채도를 바꾼다. 김미리 작가는 오도이촌을 택한 뒤 도시와 자연의 사뭇 다른 속도를 알게 됐다. 산과 강에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며 어깨를 짓누르던 시름이 한결 가벼워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깊어졌다.
< 김미리 작가 INTERVIEW >
Q. 어떤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나요?
‘집에 있는 시간과 집을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산다’고 소개해요. 저는 도시와 시골 집을 오가며 살고 있잖아요. 집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이라고 하면 우리 가족이나 어떤 시간이 떠오르는 것처럼 포괄적인 의미의 집을 좋아해요.
Q. 시골에서 지내는 ‘수풀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뒤에는 작은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집이죠. 처음 수풀집을 본 친구들은 ‘귀신의 집’이라 불렀어요. 그만큼 원형은 작은 폐가였어요. 맨 처음 집과 만났을 때 한옥의 골조와 형태, 특히 대청마루가 마음에 들었어요.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한옥에 산 적이 있어서인지 집에 대청마루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게 고치고 싶었어요. 망가지고 없어진 부분만 기능할 수 있게끔 바꾸고 기본 골조는 그대로 활용했어요.
Q. 어떤 마음으로 일주일에 이틀씩 도시를 벗어나는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도피였어요. 직장인 10년 차가 됐을 무렵 번아웃이 크게 왔거든요. 직장 생활도 그렇지만 인간관계도 그렇고, 도시 생활도 그렇고 모두 싫던 때였어요. 사람이 적고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었죠. ‘한 달 살기’ ‘퇴사’ ‘심리상담’ 등을 알아보다가 운명처럼 시골집을 사기에 이르렀어요. 그래도 빚을 지고 산 집이다 보니 퇴사할 수는 없었어요. 일을 지속하면서 번아웃을 해소하기 위해 오도이촌을 선택했어요. 일단 머물면서 결정할 요량이었죠.
Q. 수풀집이 번아웃에서 구제해주었나요?
맞아요. 맨 처음 다짐했던 건 집을 고치고 회사를 그만둔 뒤 시골로 내려와 사는 거였어요. 그런데 주말마다 시골에 머물면서 텃밭 일과 자연 생활을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더라고요.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제게 잘 맞았어요. 오히려 회사 생활도 잘하게 됐어요. 승진도 하고, 새로운 분야로 이직도 하고, 시골집을 계기로 글도 쓰게 됐죠. 도피처럼 시작했던 오도이촌이 심신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 거예요.
Q. 연고 없는 지역을 선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서울과 가까웠으면 해서 근교 전원주택을 봤어요. 그런데 양평, 횡성 같은 근교 지역은 생각한 예산을 많이 벗어났죠. 제가 원하는 집의 기준인 마당이 있지만 너무 넓지 않고 한옥인 곳을 찾다 보니 충남 금산에 닿았어요. 금산은 개발이 되지 않아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에요.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읍내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대전이 나와요. 도심과의 접근성도 나쁘지 않고, 자연이 아름답다는 점이 특히 좋죠. 금산이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는 뜻이라 하더라고요.
Q. 도시와 시골 집의 의미가 궁금해요. 특히 ‘집’을 떠올릴 때 단번에 생각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두 집의 위치와 형태가 완전히 달라요. 하지만 집의 의미는 비슷한 것 같아요. 책 «아무튼, 집»에 쓴 것처럼 내가 나를 위해 만든 세계라 의미는 비슷하지만 기능적인 면은 달라요. 5일 동안 머무는 도시 집은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잘할 수 있게 돕는 기능이 있어요. 아무래도 도시 집을 생각할 때는 읽고 쓰는 실내 공간이 생각나고요. 시골에 있는 수풀집을 떠올리면 실내 공간보다 실외 공간이 그려져요. 마당이나 텃밭, 산과 들 같은 자연을 폭넓게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Q. 도시 집과 수풀집의 하루는 어떻게 다른가요? 각각 먹고, 자고, 쉬는 모습이 궁금해요.
먹는 생활이 많이 달라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시에서는 밥하기 싫을 때 배달 음식을 시키기도 하고,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있고, 밤늦게 편의점에 갈 수도 있죠. 반면 수풀집은 주변에 편의점은 물론 슈퍼도 없고 식당도 없어서 입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내 손을 거쳐야 해요. 그렇다 보니 텃밭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활용해서 직접 해 먹어요. 시간을 쓰는 방식도 달라요. 도시 집에서는 루틴이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을 늘 고민하고요. 하지만 수풀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산책할 때도 도시에서는 분 단위로 생각한다면, 시골에서는 걸어갈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걸어보는 식으로 여유 있게 시간을 써요.
"내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나라는 쓸모를 확인하고 성장하는 것을 느껴요."
Q. 시골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겪게 되는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성향 자체가 항상 가는 데만 갈 만큼 익숙하고 안정적인 걸 좋아하거든요. 게다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람이 줄잖아요. 그런데 시골은 자연에 가깝다 보니 매일이 다르고 예상치 못한 일도 자주 생겨요. 시골 어르신을 보면 저와는 너무 다르게 살아오신 분이 많더라고요. 도시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분들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경험하니까 제가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Q. 두 집에서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도 다르죠?
의외로 시골의 시간이 빨라요.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 밥만 해 먹어도 하루가 다 간다고 하잖아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체감하고 있어요. 시골에서는 모든 걸 직접 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분주히 지내다 보니 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죠. 심지어 식물의 생장 속도도 달라요. 도시 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오늘과 어제의 차이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데, 시골집 텃밭은 하루도 똑같지 않아요.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걸 오감으로 알게 돼요.
Q.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가을에 기대하는 것이 있나요?
5주년을 맞이한 수풀집을 수리하고 정리하고 있어요. 더 추워지기 전에 앞마당 화분, 울타리도 새로 하려고요. 얼마 전에는 본격적인 추위가 올 것 같아서 보일러에 기름을 넣었어요. 시골은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니까 기름 보일러를 채워둬야 겨울을 무탈히 보낼 수 있거든요. 그간 금산 외 지역을 돌아보지 못했는데, 근교로 가을 여행도 떠나고 싶어요.
Q. 부지런히 주변을 가꿔야 하는 시골살이가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풀집에서의 생활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자연 덕분이에요. 좋은 것을 보고 지내기 위해서는 작은 수고를 감내해야 하지만, 그 안에 보람이 있어요. 도시에서는 나를 도와줄 전문가가 늘 주변에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내 손으로 해결할 필요를 못 느꼈어요. 그런데 시골에 살면 수도꼭지 하나 끼우는 일도 직접 해야만 해요. 내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나라는 쓸모를 확인하고 성장하는 것을 느껴요. 스스로를 집안일을 잘 돌보는 집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집의 일부라는 사실에 효능감이 들고, 나아갈 동력도 돼요.
Q.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 많죠. 당장 도시를 벗어날 수 없지만 시골살이를 꿈꾸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주변에서 많이 물어봐요. 근처에 수풀집 같은 집 없냐고요. 결정하기 전에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저는 집을 알아보고 바로 계약해서 고치는 과정을 거쳤지만, 요즘은 한 달 살기 숙소도 잘되어 있잖아요. 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해봐도 좋겠어요. 시골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안 맞고, 안 맞을 것 같은데 잘 맞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무작정 집을 사서 고쳐 살기보다 월세나 전세로 살아보고 나한테 맞는 집을 찾아가는 걸 추천해요.
Q. 수풀집 이전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요?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내 취향을 전혀 몰랐어요. 비슷한 행위의 반복 속에서 안정과 기쁨을 누리는 편이어서 더 그랬을 테죠. 도시와 사람에게서 떨어진 공간에서 홀로 결정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됐고요. 예전에는 연봉과 승진처럼 물질적인 것들을 신경 썼거든요. 이제는 스스로를 탐구하는 데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덜 가졌는지 더 많이 가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아요.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고 일상 속 작은 행복들을 더 잘 체감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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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현예진
사진 제공 김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