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빗장을 여는 '무해함'의 기술 🧐
트렌드 분석가 강승혜 작가가 말하는 마음의 빗장을 여는 가장 다정한 생존법.
강승혜 작가
| 20여 년간 리서치와 브랜딩, 마켓 인사이트 등 트렌드 분석을 해왔는데, 그중에서도 데이터 분석에 매료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요?
저는 원래 ‘왜?’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어요. 비슷한 품질인데도 왜 어떤 브랜드는 사랑받고, 어떤 브랜드는 잊히는지 그 근원이 늘 궁금했죠. 데이터는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고요.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게 사람들의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이에요. 설문조사에서는 “가성비 때문에 샀다”고 이성적으로 답하지만, 실제 구매 순간엔 결국 예쁜 걸 고르고, 때로는 ‘귀엽다’는 이유 하나로 품절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죠. 서로 다른 데이터를 교차해볼 때 비로소 그 간극이 드러나는데, 왜 그런 간극이 생겼는지 추론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내는 것이 제 일의 핵심이에요.
| 데이터 전문가로서 일상적으로 꼭 모니터링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나요?
먼저 구글 뉴스에 백화점, 편의점, 마트, 이커머스 같은 리테일 키워드를 걸어두고 관련 기사들을 꾸준히 봐요. 인스타그램에서는 트렌드와 밈, 신상품을 부지런히 큐레이션해 올려주는 계정 중에 양질의 정보가 많다 싶은 계정을 팔로해서 챙겨 보고요. X와 틱톡은 최신 트렌드가 가장 먼저 생겨나는 곳이라 커뮤니티와 함께 주기적으로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눈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검색어 트렌드나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열어서 실제 검색량과 언급량이 어떤 추이와 패턴을 그리는지 확인해요. 이때 중요한 건 여러 채널에서 제시되는 것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파악하는 거예요. 저는 이런 연결 고리를 퍼즐 맞추듯 따라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 최근 ‘이 브랜드야말로 비즈니스를 귀엽게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국내외 베스트 브랜드를 꼽는다면요?
귀여움은 디자인이나 생김새가 아니라 태도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이에요. 유명한 캐릭터를 내세운다고 귀여운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두 가지 사례를 꼽아볼게요. 첫 번째는 요즘 워낙 인기인 국립중앙박물관이에요. 박물관 굿즈 브랜드 ‘뮷즈’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품절 행렬을 이어갔죠. 여기엔 중요한 원리인 ‘갭(Gap)’이 있어요. 1000년 전 유물이 파스텔 톤의 트렌디한 미니어처로 나타났을 때 그 대비가 귀여움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거죠. 유물이 일상 가까이에 놓이는 순간, 박물관은 ‘가르치는 곳’에서 ‘곁에 두고 싶은 곳’이 된 거고요. 다음으로는 영국의 인형 브랜드 젤리캣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젤리캣 팬들은 인형을 사는 일을 구매가 아니라 ‘입양’이라고 불러요. 이 언어의 차이가 소비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거든요. 인형은 재고가 아니라 존재가 되고, 손님은 구매자가 아니라 보호자가 되는 거죠. 두 사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물건을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애착의 대상’으로 바꿔놓았다는 거예요. 감탄은 거리를 좁히지 못하지만, 애착은 곁을 내어주게 하죠. 그래서 저는 귀여움을 ‘마음의 빗장을 여는 감정’이라고 불러요.
| 귀여움이라는 무기가 유독 강력하게 통하는 산업군이나, 반대로 귀여움이 독이 되는 영역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소비자와의 심리적 거리가 멀고 신뢰의 장벽이 높은 산업일수록 귀여움을 잘 쓰면 그 효과는 더 커져요. 대표적인 곳이 금융이에요. 정장 차림으로 “우리를 믿으세요”라던 은행 앱에 지금은 캐릭터가 살고, 캐릭터 카드가 발급과 사용 모두에서 일반 카드를 앞서죠. 행정에서도 충주시 유튜브의 충주맨처럼 ‘엄근진’하던 관공서가 먼저 힘을 뺐고요. 종교계에서는 ‘뉴진스님’과 귀여운 동자승 캐릭터가 종교를 어렵고 먼 것에서 곁에 두고 싶은 것으로 바꿔놨어요. 그렇다면 귀여움이 독이 되는 영역도 있을까요? 저는 영역보다는 특정한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귀여운 존재 앞에서 경계를 푸는 이유는 불순한 의도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믿음을 이용해 귀여움을 가장하면 ‘큐트워싱’이 되고, 그게 밝혀지면 더 큰 배신감으로 돌아와요. 결국 중요한 건 솔직하고 사람 냄새 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이런 태도가 앞으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기분을 돌보는 소비야!” 귀여운 것들에 지갑을 여는 현대인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 «귀여워서 삽니다».
| 책에서 귀여움을 ‘도파민 시대에 절실한 세로토닌의 힘’이라고 정의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사람들은 왜 하필 귀여움에서 위안을 얻으려 할까요?
귀여움은 세로토닌을 끌어내는 아주 탁월한 매개체예요. 귀여운 대상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을 주죠. 그런 면에서 위안의 핵심은 통제할 수 있는 평온함과 안전감에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 상황도, 기술 발전 속도도, 타인의 마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책상 위의 작은 인형만큼은 언제나 변함없는 얼굴로 나를 맞아주니까요. 1920년대 전쟁 시기에 테디베어가 위안의 상징이 됐듯, 팬데믹을 지나며 전 세계 어른들의 품에도 다시 말랑한 인형들이 안기기 시작했어요. 지금 귀여운 것들을 곁에 두는 행위는, 걷잡을 수 없는 불확실함 속에서 내면의 불안을 통제하고 다독이기 위해 현대인이 선택한 다정하고도 영리한 생존 방식인지도 몰라요.
| 요즘 Z세대는 망그러진 곰이나 듀 가나디처럼 개성 있고 어딘가 어설픈 캐릭터에 더 열광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나요?
최근 큰 사랑을 받은 ‘먼작귀’나 ‘망그러진 곰’ 같은 캐릭터를 보면 대단하거나 화려하지 않아요. 푼돈을 벌려고 잡초를 뽑고, 소박한 밥 한 끼를 친구와 나눠 먹으며 소소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지요. 끝없는 경쟁과 저성장의 시대를 견뎌내는 청년들은 이 작은 존재들에게서 자신의 고단한 일상을 봅니다. 그리고 ‘애써 대단해지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서툴러도 충분해’라는 크나큰 위로를 받죠. 결국 귀여움이란 대상이 완벽하지 않을 때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어지는 ‘긍휼과 관용’의 정서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이 완벽함과 성취를 강요할수록 사람들은 팽팽했던 마음의 끈을 스르르 풀어주는 작고 무해한 존재들 곁에서 따스한 위안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 귀여움 마케팅도 지나치면 소비자가 피로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짝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귀여움 전략은 무엇일까요?
결국 소비자의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캐릭터 그 자체가 아니라, 브랜드와 상호작용하며 느꼈던 기분 좋은 경험과 감정이거든요. 겉모습은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느낀 좋은 감정, 다정한 태도나 철학은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없고, 한 번 각인되면 쉽사리 없어지지도 않아요. 그렇게 좋은 감정이 깃들면 사람들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브랜드 팬덤이에요. 그런 면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장항준 감독의 케이스는 생각해볼 만해요. 그가 유독 폭넓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평소 가식 없이 솔직하고, 허술하고 하찮아 보이는 자신의 모습조차 있는 그대로 유쾌하게 드러기 때문이에요.
| 요즘 귀여움을 즐기는 연령대가 정말 넓어졌다는 게 체감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사례나 지표가 있나요?
귀여움의 세대 확장은 단순한 심증이 아니에요. 예전엔 ‘나잇값’이라는 잣대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나이 들어서도 좋아하는 것들을 끝까지 즐기는 모습을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가치관의 전환이 귀여움을 전 세대가 향유할 토대가 되어주었죠. 이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장년층의 덕질 문화예요. 아티스트를 따라 팬미팅과 콘서트를 다니고 굿즈를 사고 ‘스밍’으로 차트 줄 세우기를 하는 어른들이 지금 굉장히 많은데, 임영웅 팬덤이 대표적이에요. 결국 귀여움이 연령의 벽을 허문 건, 취향을 검열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일상의 위안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어른들이 많아졌다는 뜻인 것 같아요.
| 귀여운 걸 좋아하면서도 ‘나이 들어 주책인가?’ 하고 멈칫하는 3050세대가 많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귀여움을 즐기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결국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연령이나 성별처럼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특성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참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고 있어요. 여전히 보수적인 편견이 남아 있지만, 교육부터 그렇게 바뀐 지 오래됐으니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더 강해질 거라고 봐요. 덧붙이자면, 책을 쓰고 나서 얻은 깨달음은 귀여움이란 결국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특성이라는 점이에요. 다정하고 배려 깊은 사람들은 어디서나 환영받죠. 편안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주는 브랜드가 사랑받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으니까요.
| 최근 지갑을 열게 만든 ‘귀여움 소비’가 있나요.
사실 남편이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는 자질구레한 귀여운 것들을 저는 곧잘 사들이는 편이에요.(웃음) 그 이유는 제 책에서도 언급한 Z세대 소비자의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귀여운 걸 사는 건 나의 기분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소비 생활을 들킨 것 같아 혼자 웃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소비를 사치나 낭비가 아니라 ‘기분을 돌보는 소비’라고 불러요.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쥐는 귀여운 물건 하나가 고단한 일상 속에서 나를 한 번 더 웃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투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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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Photographer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