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자, 후회하지 말고
4인 가족이 낡은 캠핑카를 타고 2년간 45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 부모를 바라봐주는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추억을 쌓기 위해서다.
유튜브 채널 ‘알찬’ 운영자 한승훈유튜브 채널 ‘알찬’의 한승훈은 ‘지금 아니면 언제’라는 생각으로 두 아이, 아내와 함께 캠핑카에 몸을 싣고 2년간 45개국, 총 8만 킬로미터를 여행했다. 차가 모래에 빠지거나 창문이 깨지는 사건사고도 겪었지만, 가족에겐 평생 이야기해도 모자랄 추억이 쌓였다. ‘집은, 직장은, 학교는 어떡하니’라는 주위의 걱정도 많았지만, 그는 안 될 이유 대신 지금 해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했다고 말한다.
2년 동안 45개국을 거쳐 다시 한국의 일상으로 복귀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두 달이 되었어요. 시차 때문인지 매일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져요. 덕분에 아이들도 아침을 여유롭게 시작하는 것의 장점을 알게 됐어요. 집에 있는 디지털 액자에서 무작위로 재생되는 여행 사진들을 보며 “이때 여기 갔었지” “이때 이런 일 있었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해요.
여행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외형적인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거예요. 만약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더더욱 비슷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생각하는 방식은 확연히 달라졌어요. 전에는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싶은 일도 있었다면, 여행을 하다 보니까 뭐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조금 넓어진 것 같아요.

캠핑카 여행의 루트가 궁금하네요.
러시아를 거쳐 에스토니아에 입국한 후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를 거쳐 배를 타고 덴마크로 가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를 지나 영국에서 두 달 정도 머물렀어요. 스위스,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그리스를 거쳐 튀르키예에 도착했고 이외에도 여러 국가를 누볐죠. 이후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를 거쳐 중남미까지 내려갔어요. 총 이동 거리는 8만 킬로미터 정도였어요.
가족이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누구나 꿈꾸지만 선뜻 실행하기 힘든 일이에요. 특히 대출까지 받아서 떠났다고 들었는데, 과감한 결단의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아이와 학부모를 만났어요. 다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 여기죠. 그런데 한 모임에서 70대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어요. “자산이 10억 있든, 20억 있든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던 그 짧은 시절에 나는 일만 하느라 아이의 눈을 맞춰주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는다”는 말이 제 가슴을 때렸어요.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아이들이 부모와 놀아주는 시기는 평생 다시 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죠.

주변의 반대나 잔소리, 걱정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돈 벌어서 나중에 애들 중고등학교 때 뒷바라지해야 하는데 지금 다 써버리면 어떡하냐, 애들이 더 크면 가는 게 좋다, 대출 받아서 여행 가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우려 섞인 조언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많은 상담을 하면서 확인한 진리가 하나 있어요. 행복한 아이들의 비결은 결국 ‘부모와의 단단한 유대감’에 있다는 것이에요. 그 유대감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때 쌓으려 하면 이미 늦어요. 저는 아이들이 부모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시기에 세상을 함께 경험하며 정서적 자산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장기간의 가족 여행이다 보니 하루 루틴이나 역할 분담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여행 중 일상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저는 운전을, 아내는 요리를 도맡았어요. 여행 중에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특히 영국은 물가가 워낙 비싸서 머무는 동안 두 번 정도만 사 먹고, 대부분은 차 안에서 요리해 먹었어요. 일정이 끝나고 나면 쉬면서 가족들이 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각자 할 일을 해요. 아이들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내일 갈 장소를 찾는 미션을 주었거든요.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는 한국어로 검색하면 정보가 잘 나오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검색해 나온 사진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의 후보지를 추렸어요. 그렇게 찾은 장소들을 바탕으로 아내가 성당 같은 주요 명소를 찾아 최종 동선을 짜는 식으로 여행했죠. 영국에서는 여행의 큰 주제를 ‘해리포터’로 잡고 움직였어요.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는 촬영지나 관련 장소를 중심으로 다니다 보니 훨씬 몰입도도 높고 만족도도 컸어요. 전체적으로 가족이 각자 역할을 나눠서 함께 만들어가는 여행이었어요.
여행 중 틈틈이 입장권, 티켓, 영수증 등을 스케치북에 붙여 짧은 메모와 함께 남겼더니 소중한 추억이 됐다.2년간의 여행 후 가족의 유대감도 단단해졌나요?
아빠와 아이가 단둘이 마주 앉아 2시간씩 대화하기는 참 어렵잖아요. 여행을 하면서 아이와 계속 붙어 있다 보니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늘 강조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도 사람이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고요. 우리가 읽는 좋은 책들도 결국 사람이 썼기에,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지적으로 교감해야 하죠. 책에 있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이건 어때?’ ‘저건 왜 그럴까?’ 식의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힘을 기르도록 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에겐 호기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아이가 공룡 박사일 만큼 호기심이 가득하죠.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호기심을 잃어버리는 것이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어요.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안 다니던 캠핑을 시작하는 이유도 본능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의 중요성을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아이들과 세계여행을 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라고 보나요?
아이들이 5살에서 9살 사이예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서로 눈 맞추고 스스럼없이 같이 뛰어놀죠. 특히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이 가능한 시기라서 좋아요. 한국에서는 눈치 보게 되는 행동들이 해외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더 좋고요. 그런 경험 자체가 자연과 문화, 환경을 흡수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고 느꼈어요. 그 시기에는 공부를 앞세우기보다 많은 경험을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캠핑카로 떠나는 가족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원하는 순간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거예요. 문을 열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요. 튀니지 사하라사막에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롯이 가족끼리 쏟아지는 별을 보며 밤을 보냈어요. 그런 순간들은 일반 여행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렵죠. 특히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 좋은 점이 많아요. 문 열고 나가면 바로 뛰어놀 수 있고, 놀다가 들어와서 씻고 쉬는 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든요. 사막에서도 모래에서 한참 놀다가 들어와 샤워하고 쾌적하게 잠드는 생활이 가능했어요. 그런 자유로움이 캠핑카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숙소를 옮길 때마다 매번 짐을 풀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편해요. 비용을 고려하면 최소 3개월 이상 장기 여행이 좋아요.

2년간 많은 곳을 누빈 캠핑카를 스튜디오처럼 활용해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방향을 그리고 있나요?
앞으로는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많은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가 계속 밖으로 나오고, 기록되고,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예전에는 유라시아 횡단 정도만 꿈꿨다면, 요즘은 아메리카까지 가는 사람이 늘었어요. 누군가 먼저 보여주니까 그만큼 사람들의 꿈도 넓어지는 거죠. 특히 은퇴한 사람들이 세계여행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돈 낭비가 아니라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모습이 자주 보여질 때 30~40대도 미래를 더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공유하고, 책이나 콘텐츠로도 남기면서 세계여행의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지도를 기반으로 여행지의 위험을 알려주는 안심 여행 앱도 개발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가족과 떠나는 세계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마음속으로는 ‘지금 떠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다만 그 생각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계속 움츠러드는 거죠. 하지만 제가 해보니 준비는 한 달이면 충분해요. 경제적인 부분은 조금 더 검소하게 살거나 나중에 더 열심히 일해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 시간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부모를 바라봐주는 시간이 한정돼 있으니까요. 첫째가 지금 5학년이 됐는데, 벌써 저를 접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웃음) 둘째는 아직 저와 장난을 많이 치지만요. 그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 느껴요. 그리고 교육 문제를 많이 걱정하는데, 걱정만큼 공백이 치명적이진 않더라고요. 저희 아이들도 돌아와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학교생활을 잘해나가고 있어요. 갔다가 힘들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 ‘나중에’라는 말로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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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