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의 로드 무비
구순의 할아버지와 서른 살 손주가 단둘이 해외여행을 떠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유튜브 채널 ‘청춘이다’를 운영하는 손자 황원과 그보다 텐션이 높은 할아버지의 여행기, 그리고 그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하여.
유튜브 채널 ‘청춘이다’ 운영자 황원느긋한 성격의 손자와 성격 급한 ‘파워 J’ 할아버지는 태국을 시작으로 연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까지 세계를 누비며 한 편의 로드 무비 같은 시간을 쌓아왔다. 우당탕탕 이어가는 두 사람의 여행기는 많은 이의 사랑과 응원을 받았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던 중,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곁을 떠났다. ‘죽을 때까지 청춘’이라는 걸 가르쳐준 할아버지와의 여행은 가족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재생 중’이다.
할아버지가 아침마다 사과를 챙겨 드시고 일상의 아주 소소한 것까지 기록하는 등 ‘갓생러’시더라고요. 할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유튜브에 올린 네덜란드 여행기가 알고리즘을 타고 널리 알려지면서 가족들도 자연스레 제가 유튜브를 하는 걸 알게 됐어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셨는데, 연세가 드신 뒤에 다녀오신 필리핀 경험이 너무 좋으셨는지 항상 그때 얘기만 하셨어요. 또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지만, 워낙 고령이시다 보니 여행사도 부담스러워하고 가족들도 할아버지만 보내기엔 걱정이 컸어요. 그러다 삼촌이 저에게 할아버지 한 번 모시고 다녀오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어요. 할아버지의 여행을 영상으로 남기면 딸인 엄마에게도 선물이 될 것 같아 떠나게 됐어요.
할아버지와 손자가 단둘이 여행을 떠나면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행 전 두 사람의 관계는 어땠나요?
일 년에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말 그대로 보통의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보통 그 세대 어르신들은 조금 가부장적이고 딱딱한 모습이 있잖아요. 할아버지도 그런 면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동시에 굉장히 유연한 분이셨어요. 먼저 다가오시고, 대화를 편하게 만들어주시는 스타일이었죠. ‘차가운 물 마시지 마라’ 같은 건강에 관한 잔소리는 하셨지만,(웃음) 결혼이나 진로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툭 던지는 정도였어요.

할아버지께서 공복루틴까지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셨지만, 고령이시기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땐 몸이 약하셨다고 들었어요. 잔병치레도 잦아서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젊을 때부터 사과도 꾸준히 드셨다고 하고요. 여행 전까지 제 기억 속 할아버지는 굉장히 활기찬 분이셨어요. 줄넘기로 이단뛰기를 하실 정도라 건강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죠. 그런데 막상 함께 시간을 보내보니 연세가 느껴지더라고요. 힘들다는 말은 거의 안 하셨지만 피곤해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어요. 기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졌죠. 그걸 보며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어요.
여행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할아버지 모습이 있다면요?
호기심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새로운 걸 보면 직접 해보려고 하셨죠. 또 표현을 정말 잘하셨어요. 맛있으면 맛있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바로 말씀하시고 “너 덕분에 이런 걸 해본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셨어요.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새로웠고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아무래도 영상에는 좋은 모습들을 담게 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티격태격하는 순간들도 있었죠.(웃음) 할아버지는 성격이 굉장히 급하셨어요. 버스를 타도 맨 앞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셨거든요. 반대로 저는 좀 느긋한 스타일이에요. 할아버지는 그런 제 모습이 너무 답답해 “빨리 와라” 하시고, 저는 “어차피 다 같이 가니까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죠. 싱가포르에서는 좋은 호텔을 예약했는데 하필 공사 중이라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할아버지가 낮잠을 못 주무셔서 많이 예민해진 상태라 “이게 무슨 좋은 호텔이냐”며 속상해하셨어요. 그때는 저도 “이러시면 저 다음에 여행 안 갈 거예요”라고 세게 말했죠. 그러니까 조금 머쓱하셨는지 허허 웃으면서 넘어가시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할아버지와 티격태격했던 그 순간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요.
할아버지와 떠난 연변 여행에서 두만강을 배경으로 찍은 셀피.
서로 여행 스타일이 달라 힘든 점은 없었나요?
솔직히 얘기하면, 힘들긴 했어요.(웃음) 할아버지와 여행 다니면서 살도 많이 빠졌죠. 할아버지는 성격이 급하고 계획적이신 분이라 일정이 조금만 딜레이돼도 답답해하셨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편한 부분도 있었어요. 호기심이 많으셔서 새로운 음식도 잘 드시고, 별것 아닌 것도 신기해하시고, 사진도 즐겁게 찍으시고요.
그렇게 할아버지와 한창 즐겁게 여행을 다니다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고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할아버지가 오키나와 장수마을에 가보고 싶어 하셔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출발 며칠 전에 대상포진이 생겼어요. 결국 입원까지 하시게 됐죠. 병상 생활을 하시며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어요.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점점 약해지셨고 마지막에는 정말 알아보기 힘들 만큼 살이 빠져서 많이 놀랐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너무 갑작스러웠죠.
할아버지와의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해 마음에 남아 있다고 했죠.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하며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할아버지와 여행을 다니면서 늘 마음 한편에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다, 할아버지가 또 가자고 하셔도 못 간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여행을 즐거워하셨지만, 한편으로는 힘들어하시는 게 느껴져서 걱정이 됐거든요. 그래서 일본 여행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쉬워요. 특히 제가 일 때문에 “한 달 뒤에 가자, 다음주에 가자”고 몇 번 미뤘던 게 마음에 많이 남아요. 그래도 할아버지가 여행도, 영상으로 기록하는 과정도 정말 즐거워하셨다는 게 저에게는 가장 큰 위로예요.
그 기록이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여행을 함께 간 것도 좋았지만, 그 시간을 기록으로 남긴 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해요. 특히 엄마에게 큰 효도를 한 것 같아요. 지금 되돌아보면 ‘어디를 갔다’보다 ‘그때 할아버지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어떤 목소리였는지’가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특히 영상은 당시의 말투나 분위기, 온기 같은 게 그대로 담기잖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 자체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 들죠. 그래서 가능하면 사진보다 영상으로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는 의식적으로라도 가족들의 모습을 조금 더 남기려고 하고 있어요.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에요. 저는 청춘을 되게 단편적으로 생각했거든요. 20대의 젊음이 청춘이라고 생각해 그 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유튜브도 ‘청춘이다’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를 보니까 90세인데도 청춘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늘 새로운 것에 설레어하고, 도전하고, 경험하려고 하셨어요. 평소에 ‘청춘은 과연 언제까지일까’ 생각하곤 했는데 할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청춘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가장 큰 유산이죠.
‘가족’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몇 년 전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느꼈어요. 결국 남는 건 가족이구나 하고요. 단순히 ‘괜찮아’라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저보다 더 슬퍼하고 더 화내주더라고요. 그때 ‘아, 진짜 가족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닌데, 가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요. 가족은 이유 없이 같이 기뻐해주고, 슬플 때도 깊이 공감해주잖아요. 그런 존재는 결국 가족뿐인 것 같아요.

가족과의 여행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에게도 하지 못해서 아쉽고 마음에 남는 일이 있어요. 할아버지와 엄마를 함께 모시고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결국 이루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더더욱 느끼는 건데, 상황상 어렵더라도 가족 여행은 한번쯤은 꼭 해볼 가치가 있는 경험인 것 같아요. 거창한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가까운 곳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슬픔은 컸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만약 가족과의 여행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꼭 떠나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할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건 사람마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겉으로는 성공한 삶처럼 보여도, 안에는 아쉬움이나 열등감이 남아 있기도 하잖아요. 할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해 종종 말씀하셨어요. 그런데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셨으니까 90세에 누구보다 멋진 순간을 맞이하신 거겠죠. 아마 전 세계 90대 중에 가장 핫하지 않았을까요?(웃음) 그걸 보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결국 자기의 순간이 온다’는 걸 믿게 됐어요. 예전에는 빨리 뭔가를 이루고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컸는데, 지금은 조금 더 길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청춘도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조급해하기보다는 제 속도로 계속 해보려고 해요. 그게 할아버지께 배운 가장 큰 태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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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