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묘미를 발견하는 재미

 

무인양품 코리아 전략·상품본부 본부장 강명보

살림은 취향과 일상의 리듬, 공간의 서사, 구매 성향 등 개인의 수많은 선택과 지향이 모인 결과물이다. 우리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듯, 생활의 모습 또한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무인양품은 늘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물건’으로 손꼽힌다. 무인양품은 어떻게 거의 모든 생활인을 만족시키는 ‘슈퍼노멀’로 자리 잡았을까. 대부분의 브랜드가 ‘무엇을 더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무인양품은 반대의 질문을 한다. 우리의 일상과 살림에서 무엇을 덜어낼 수 있을까. 불필요한 장식과 색을 줄여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 무인양품의 마이너스 철학은 제품의 형태를 넘어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확장됐다.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무인양품. 이곳의 전략·상품본부를 총괄하는 강명보 본부장에게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생활의 미학에 대해 물었다.




무인양품 코리아의 전략·상품본부를 총괄하고 있는데, 어떻게 무인양품과 함께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현재 입사 5년 차로, 비교적 루키에 가까운 편이에요.(웃음) 원래는 패션 업계에서 MD로 일하다가 무인양품으로 오게 됐어요. 자리는 달라졌지만, 구매자의 마음을 읽고 상품을 기획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일이죠. 소비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 짚어내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본질은 같으니까요. 무인양품은 패션뿐 아니라 생활용품, 식품, 그 외 다양한 서비스까지 다루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굉장히 도전해보고 싶은 브랜드였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재일 교포셔서 저 역시 일본어에 능통한 점이 무인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한몫한 것 같고요.(웃음)

 

무인양품은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무인양품스러움’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무인양품 제품으로 생활의 방식을 새롭게 정립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이렇게 개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요?

무인양품이 내세우는 몇 가지 슬로건이 있어요. ‘기분 좋은 생활’ ‘생활에 도움이 되다’ 같은 말들이죠. 번역된 표현이지만, 결국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작은 순간이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무인양품의 지향점이에요. 예를 들어 몇 년 전 ‘기분이 좋은 건 어째서일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는데, 이건 청소를 하면 기분이 정돈되고 좋아지는 느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죠. 이처럼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사람들이 조금 더 기분 좋게, 쾌적하게, 혹은 인간미 넘치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과 그 감각에 대해 제안하는 방식을 훨씬 선호합니다. 질문에서 얘기한 ‘스며든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겠네요. ‘제품이 좋습니다, 사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 고객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한국의 무인양품에서 눈에 띄는 모습은 식품 카테고리의 확장이에요. 이런 변화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무인양품은 모두가 알다시피 일본 브랜드입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무인양품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지만, 나라마다 내재화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죠. 선호하는 공간의 형태, 일상의 리듬 같은 것들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생활을 아주 면밀하고 섬세하게 도와주는 데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렇다 보니 각 나라의 생활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 개발이 필요하던 차에 구상한 전략이에요. ‘만약 무인양품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봤죠. 의류의 경우 한두 달에 한 번, 생활용품은 다 사용했을 때, 그리고 가구는 몇 년에 한 번 사지만 식품은 매일 먹잖아요. 그래서 저는 무인양품이 한국 고객에게 더 가까워지려면 매일 와도 살 수 있는 먹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장을 보듯 일상 루틴처럼 더 자주 무인양품 매장에 들를 수 있도록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식품 카테고리를 확장해왔고, 한국인의 식생활에 맞는 제품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어요.

 

어떤 제품인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무인양품 코리아에는 한국인의 식습관과 식문화를 연구해 제품화하는 식품팀이 있어요. 사실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은 주변에 너무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인양품에서 꼭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1차 목표였어요.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밑반찬 시리즈예요. 늘어나는 1인 가구 또는 2인 가구를 고려해 두 사람이 한 번 식사할 때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반찬을 소량으로 구성한 제품이에요. 또 국은 먹고 싶지만 혼자 재료를 사서 끓이기 번거로운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동결 건조 수프도 출시했죠. 지역마다 유명한 면 요리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역 국수 시리즈도 선보이고 있어요. 로컬의 원재료를 사용해 지역 농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대기업보다는 지역의 독자적 기술을 갖춘 작은 업체와 협업해 로컬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단순히 식료품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해당 지역을 알리는 데도 조금이나마 일조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식품 외에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제품이 또 있나요?

대표적인 상품이 스테인리스 수저예요. 일본은 스테인리스 수저를 잘 안 쓰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식당에 가면 거의 다 스테인리스 수저를 쓰잖아요. 한국인의 식습관을 상징하는 아이템이겠구나 싶어 국내 제작 제품으로 개발하게 됐죠. 출시 후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그리고 의외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구매하더라고요.(웃음) 이런 제품이야말로 ‘한국에서 태어난 무인양품이라면 만들었을 법한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상품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먼저 소비자가 불편을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살펴봅니다. 내부에서는 이를 ‘옵저베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생활 속 불편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죠. 예를 들어 제가 애착을 갖는 제품 중 하나가 욕실화인데, 이것도 한국 문화에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을 가미해 개발한 케이스예요. 욕실화는 한국에서는 일종의 생필품처럼 여겨지지만 일본은 화장실, 세면대, 샤워 공간이 나뉘어 있어 사실 별도의 욕실화가 필요하지 않아요. 제가 부임했을 때 전국 매장 점장님들에게 “고객들이 많이 문의하지만 없는 제품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많은 분들이 ‘욕실화’라고 하더라고요. 그 덕분에 무인양품다운 욕실화를 개발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품을 기획할 때 먼저 불편을 발견하고, 그걸 해결할 기능을 고민한 뒤 본질을 해치지 않는 디자인과 가격을 결정하는 순서로 접근해요.

 

무인양품 제품은 흔히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해요. 이런 제품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내구성, 기능성, 그리고 덜어내는 디자인이죠. 무인양품은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됐는데, 당시 일본은 물건이 풍성한 시기라 컵 하나에도 어떤 식으로든 부가가치를 더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해요. 그런 환경 속에서 ‘본질에 충실한 제품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등장했고요. 원가를 높이지 않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면서 지금의 미니멀 디자인이 만들어진 셈이죠. 실제로 저희는 ‘마이너스적 사고’를 중심으로 제품을 기획해요. 컵 하나를 만들더라도 계속 덜어내고 또 덜어내 꼭 필요한 요소만 남기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시작된 접근이 오래 써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과 실용성을 동시에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무인양품 하면 규격화된 이미지가 강했는데, 제품 기획이나 운영이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제품 기획이나 매장 구성도 달라질 것 같아요.

물론이에요. 요즘 한국은 1인, 2인 가구가 늘어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택도 자유로워지면서 가족 형태가 예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어요. 또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요시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밀도에 대한 감각, 이에 따른 생활 패턴도 바뀌고 있죠. 추구하는 생활상에 따라 식사 방식도 천차만별이고, 물건을 정리하고 수납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다이내믹한 변화는 저희의 제품 기획과 매장 구성에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 상품 판매에도 영향을 주고 있나요?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제품이 ‘리빙 다이닝 테이블’이에요. 기존에는 식탁과 거실 소파를 따로 두는 집이 많았는데, 이제는 큰 다이닝 테이블을 두고 식사와 다양한 작업, 티타임을 보내는 경우가 굉장히 늘었어요. 리빙 다이닝 테이블은 특히 1~2인 가구가 작은 집에서 식사, 취미, TV 시청까지 모두 하나의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돼 최근 판매가 많이 늘었죠. 통계를 보면 주로 신혼부부가 많이 구매하는 편이에요.


무인양품의 자원 순환 프로젝트 리무지(ReMUJI)는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브랜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시도로 느껴집니다. 지속 가능성에 주목하는 브랜드의 가치관이 소비자의 생활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리무지 캠페인은 회사로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사명감을 가질 만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인양품은 시작부터 ‘불필요한 것을 만들지 않고, 버려지는 것을 활용한다’는 철학을 내걸고 출발했거든요. 한 가지 예로 무인양품에서 선보인 ‘재생 플리스’는 몸판부터 부자재까지 단일 소재로 제작해 분리 과정 없이 업사이클링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옷이에요. 의류 기획자 출신인 저에게도 인상적인 시도였죠. 또 전국 무인양품 매장의 진열 자재로 사용된 종이걸이를 회수해 재탄생시킨 ‘이어지는 노트’ 역시 이 철학을 반영한 결과물이죠. 저희는 제품 판매를 넘어 수거와 재활용까지 포함하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내가 쓰는 물건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처리되는지까지 살펴보는 소비자들도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고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야 한다면 리무지를 통해 자원 순환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획한 저희도, 이용하는 고객들도 더 나은 순환을 함께 완성해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지속 가능한 쓰임을 찾아 사용을 이어나가는 무인양품의 자원 순환 프로그램인 리무지(ReMUJI) 캠페인

 

수많은 무인양품 제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한 욕실화도 좋고, 다른 하나를 더 고른다면 파일박스 시리즈요. 원래 다양한 페이퍼와 파일 등을 정리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창의력 높은 소비자들은 그 외의 용도로 훨씬 다양하게 활용하더라고요. 유튜브 쇼츠 같은 것을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정말 많아요. 어떤 사람은 프라이팬을 정리하는 칸막이로 쓰고, 또 어떤 사람은 물티슈를 담아두는 용도로 쓰기도 하고요. 저는 세탁실 용품과 책을 정리하는 데 활용하고 있어요. 아주 유용합니다.(웃음) 제품의 원래 기획대로 사용하는 것도 기획자로서 뿌듯하지만, 같은 제품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게 생활의 묘미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무인양품 코리아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길 기대하나요?

일단 가시적으로 설정한 현실적인 목표는 오프라인 매장을 더 늘리는 거예요. 일본에는 약 800개의 점포가 있지만 한국은 현재 50개 정도거든요. 또 하나는 매장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입니다.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오히려 매장을 열고, 이를 지역 커뮤니티처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매장을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민이 편하게 모이는 열린 공간으로 보는 것이죠. 그 안에서는 전시나 이벤트 같은 다양한 활동도 이루어지고요. 한국 역시 고령화, 지역 소멸 등의 깊은 사회적 고민을 안고 있잖아요. 이런 문제를 해소하면서 브랜드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 저희의 큰 목표이자 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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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제민주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