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
대학은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기업은 직무를 재정렬하며, 신입 고용은 축소되고 있다. 변화의 중앙에는 여전히 인간이 서 있다.
➊ 스탠퍼드대학교 내 줄어드는 코딩 수업
스탠퍼드대는 2025년부터 일부 컴퓨터과학 입문 과정에서 전통적인 코딩 작성 실습을 축소하고, AI 기반 생성 도구와의 협업을 중심으로 재편된 커리큘럼을 도입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코딩 언어를 익히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는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AI에게 ‘무엇을 만들 것인지’를 명령하는 능력을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진은 이를 ‘코딩 능력의 축소’가 아니라 ‘기획·설계·검증 능력의 강화’로 규정했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부는 “AI가 결과물을 생성할 순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결정하고 그 결과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는 AI 시대 교육 목표가 ‘코드를 쓰는 사람’에서 ‘코드를 쓰게 하는 사람’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➋ 빨라지는 산업 자동화, 그러나 책임은 인간에 귀속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여름 발간한 보고서(How will AI Affect the Global Workforce?)에서 AI가 대량 정보를 매우 빠르게 살펴보고 비슷한 사례나 규칙을 찾아내는 작업에 강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고객 문의나 거래 기록 같은 데이터를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에서 효율이 높다는 것.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업무를 AI가 대신 처리하면서 생산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반면 위험을 판단하거나, 상황의 맥락을 읽고 결정해야 하거나, 책임이 따르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일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AI 확산이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업무 내용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변화는 회사와 개인의 커리어에서도 실행 중심의 능력뿐 아니라 판단 능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최근 보고서와 여러 게시글을 통해 AI가 산업의 모습을 빠르게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AI가 다양한 일을 대신 처리하더라도 최종 판단과 책임은 여전히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IMF는 이를 위해 교육제도와 재훈련 프로그램 등을 강화해 사람들이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AI 관련 기술이 필요한 일자리에서 더 높은 임금과 고용 기회가 생겨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체 고용이 자동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즉 AI가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동시에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더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➌ 선택과목이 아닌 필수 교양이 된다
미국 대학가에서는 AI를 전공자만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익혀야 할 기본 역량으로 바라보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는 학부 교양 과정에 AI 관련 과목을 포함시키고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연결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인공지능 이해(AI Fluency)’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는 AI가 직업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특정 전공자뿐만 아니라 비전공자까지 AI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선택이다. 펜실베이니아대와 와튼스쿨도 2025년 가을 학기부터 AI 전공 및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해 머신러닝, AI 윤리, 딥러닝을 포함한 과목을 정규 과정에 편입시켰다. 또한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리하이대는 ‘AI 대비(AI Readiness)’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활용 능력과 윤리적 판단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며 AI를 학습 도구이자 분석 프레임으로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학이 AI를 단순 선택과목이 아니라 현대 교양의 일부로 편입시켜 노동시장보다 앞서 커리큘럼을 개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➍ 젊은 층 고용 저하에 영향을 끼치는 AI
스탠퍼드대 산하 디지털이코노미랩은 2025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생성형 AI가 고용시장, 특히 사회 진입 단계에 있는 젊은 층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는 미국의 급여·고용 데이터 기업 ADP(Automatic Data Processing)의 월별 고용·급여 데이터를 활용해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을 선별하고 실증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고객 서비스 등 자동화 충격이 큰 직무에서 22~25세 고용이 2022년 말 대비 약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간호조무사를 비롯해 AI에 노출되지 않은 직군에서는 뚜렷한 감소세가 관찰되지 않았다. 전체 고용은 증가하고 있지만 젊은 층 고용 성장만 정체된 점도 보고서는 지적했다. 연구진은 AI가 업무 자동화에 활용되는 직무에서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며, 인간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직무에서는 감소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용 감소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고용 충격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변수를 통제한 후에도 고용 감소는 젊은 층에서만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나타났다. 임금 변화와 관련해서는 아직 확연한 결과값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AI 도입 초기 단계인 만큼 고용 자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AI가 고용시장 전반의 소멸을 초래하기보다는 직무 구조와 진입 경로를 재편하는 초기 시그널로 평가했다.
➎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보조 기술로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Accenture)는 연례 기술 전략 보고서(Technology Vision 2026)에서 여러 기업이 AI를 도입한 이후 내부 업무가 ‘생성→검토→승인’ 3단계로 재정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성’ 단계에서는 AI가 초안 작성, 분류, 계산 등 반복적 실행을 담당하고, ‘ 검토’ 단계에서는 사람이 오류나 누락, 맥락을 점검하며, ‘승인’ 단계에서는 최종 결정과 책임이 인간에게 귀속된다. 기업용 IT·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IBM 역시 AI가 분석과 제안 생성에는 탁월하지만, 결과의 의미를 판단하고 책임 소재가 따르는 선택은 인간이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회계·세무·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피터블유시(PwC) 또한 전략, 법무, 세일즈, 고객 대응 등 책임 소재가 명확한 부문에서 AI를 의사결정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분석과 현황은 AI를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보조 기술로 위치시킴으로써 기업 내부의 직무 구조가 실행 중심에서 판단·조율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➏ 정보를 다루는 것을 넘어 결론을 내리는 전문성
글로벌 고용·채용 네트워크 플랫폼 링크드인은 AI 도입 이후 전 세계 기업에서 리서치·보고 정리·문서 관리 등 정형화된 실행 업무의 채용 수요가 감소한 반면, 고객 컨설팅·기획·상품 전략처럼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업무의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한 국제 고용 서비스 기업 맨파워그룹이 발간한 보고서(Employment Outlook Survey 2026) 역시 기업들이 ‘정보를 수집·정리하는 사람’보다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두 기관은 이러한 변화가 특히 커리어 초기 단계의 대체 및 축소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사회 초년생 시기에 반복 업무를 통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해당 영역이 AI로 빠르게 자동화되면서 초급 직무 자체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빠른 업스킬, 도메인 시장에 대한 이해, 현장 경험 등이 커리어 초기의 생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➐ 입사 이후에도 거듭되는 AI 교육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대기업 HR 부서는 AI 도입 이후 대학 교육과 현장 요구 사이에 발생하는 ‘능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내 재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확장하고 있다. IBM은 스킬빌드(SkillsBuild) 프로그램을 통해 AI · 데이터 분석·사이버 보안 분야의 재교육을 제공하며, 마이크로 소프트는 링크드인 러닝(LinkedIn Learning)과 연계해 AI 기반 도구 활용·데이터 정리·모델 검증 등 실행 단계를 다루는 실무형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신입·초급 인력의 단순 기술 습득보다는 도메인 이해와 문제 정의, 결과 해석 등 판단 중심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글로벌 리서치 기업 가트너(Gartner)는 2026 보고서에서 기업 재교육 프로그램의 성격이 단순한 ‘업스킬(Upskill)’이 아니라 직무 설계 변화에 대응한 ‘리스킬(Reskill)’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➑ AI 리터러시의 중요성 대두
AI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면서 단순히 AI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을 넘어 AI가 내놓은 결과를 해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 AI 리터러시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미국 주요 대학과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는 AI 관련 인증 과정, 이른바 마이크로 크레덴셜(Micro credential) 프로그램이 빠르게 늘고 있다. MIT, 하버드, UC버클리 등 주요 대학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 에드엑스(edX)를 통해 AI 윤리, 데이터 관리, 모델 검증 등을 다루는 짧은 인증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미국 온라인 교육 플랫폼 코세라(Coursera)는 구글, IBM 등과 협력해 실무형 AI 활용 과정을 운영 중이다. 유럽연합 역시 AI 규제 도입에 맞춰 데이터 관리, 감사, 책임 분야 자격 제도를 준비 중이다. 여러 기관의 연구 보고서는 ‘AI가 답을 생성해도 그 답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출처 아이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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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유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