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진짜 얼굴들

날것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예능부터 지독히 평온한 일상의 영화와 다큐까지. 자극과 여백 사이에서 발견한 우리 안의 진짜 얼굴들




다큐멘터리 3일

2022년에 종영되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다시 부활하길 바라고 있는 <다큐멘터리 3일>. 이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72시간이라는 인고의 여정 끝에 비쳐주는 인간의 ‘진심’ 때문이다.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작고 위태로운 배 위에서 시를 읊으며 국문 학도의 꿈을 반추하는 낭만 어부의 모습은 고단한 생존 본능 너머에 숨은 인간의 고결한 서정성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관찰할 뿐이지만 그 72시간의 여백을 채우는 것은, 생의 현장에서도 기어이 낭만 한 조각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이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성난 사람들(BEEF)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난폭 운전이라는 사소한 충돌을 기점으로 억눌린 분노가 어떻게 인간을 끝까지 밀어붙이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민자, 가장, 성공한 사업가라는 역할 뒤에 숨은 대니와 에이미의 분노는 유치한 복수로 분출되지만 그 찌질함마저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선악 구도를 제시하지 않고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쓰다 무너지는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분노는 외면할수록 더 잔혹해진다는 사실을 불편할 만큼 솔직히 보여준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가장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얼굴을 한 작품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기술과 자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노동자는 시스템 밖으로 배제된다. 그 절박함 속에서 만수는 살인을 저지르지만, 끝내 죄책감과 미안함을 내려놓지 못한다.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면서도 어쩐지 섬뜩한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 ‘어쩔 수가 없다’는 합리화 끝에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만수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저 상황이라면 달랐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만든다.

 

인간극장

KBS1 <인간극장>은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라는 기획 의도를 묵묵히 지켜왔다. <인간극장>의 무대에 선 이들은 그저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존재한다. 2000년부터 우리 이웃의 삶을 가까이에서 따라가며 인간의 오욕칠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을 기록해왔다. 눈물과 감동의 서사 뒤에는 늘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그래서 <인간극장>은 사건이 아니라 태도로, 드라마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인간 본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거액의 상금을 미끼로 생존 게임에 내몰린 사람들을 통해 빈부 격차와 계급 경쟁이라는 동시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실패의 기억을 안고 모인 사람들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살기 위해 배신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게임의 잔혹한 규칙보다 더 무서운 건, 그 규칙에 너무 빨리 적응해버리는 인간의 얼굴이다. 시즌 1이 생존 앞에서 무너지는 개인의 윤리를 다뤘다면, 시즌 2는 그 파국을 가능하게 한 구조와 권력을 드러내며 우리가 게임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이미 규칙을 받아들인 공범인지를 묻는다.


패터슨

버스 운전사이자 시인인 한 남자의 반복되는 일상을 조명한 영화 <패터슨>은 ‘심심할 만큼 잔잔한’ 삶의 이면에 깃든 숭고함을 포착한다. 주인공 패터슨은 성냥갑이나 맥주잔 같은 사소한 풍경 속에서 시를 길어 올리지만, 그 기록을 세상에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평생의 흔적이 담긴 시 노트가 반려견에게 갈갈이 찢겨 나가는 순간에도 그는 절망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하얀 종이 위에 다음 시를 써 내려간다. 상실마저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내면적 질서를 지켜내는 인간의 고요한 품격을 보여준다.


다 이루어질지니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는 ‘인간은 본능대로 사는가, 아니면 선택하며 사는가’라는 질문을 판타지 언어로 풀어낸다. 스스로를 악한 존재라 믿는 가영이 끝까지 ‘좋은 선택’을 하려 애쓰는 과정은 인간다움이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과 의지에 있음을 드러낸다. 김은숙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선택의 반복이며, 그 선택을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은 타인과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결국 더 나은 인간이 되기로 ‘선택’하는 의지야말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본성임을 표현한다.


나는 SOLO

혹자는 SBS <나는 SOLO>를 두고 ‘문화인류학 도감’ ‘인간 다큐’라고 말한다. 연애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관찰하는 리얼리티에 가깝기 때문이다. 짝을 찾기 위해 모인 일반인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합숙하며 계산, 질투, 자기합리화 같은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제작진은 이를 미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보낸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설렘보다 분통을, 로맨스보다 인간 군상의 생생한 단면을 남긴다. 이 날것의 순간 속에서 시청자는 출연자를 통해 타인을 보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데블스 플랜

<데블스 플랜>은 ‘두뇌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계산하고 흔들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대와 배신, 협력과 복수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일주일간의 합숙은 암기력이나 추리력보다 관계를 유지하고 깨뜨리는 감정의 기술을 시험한다. 특히 감사, 미안함, 억울함, 행복 등 눈물로 응축되는 복합적 감정은 이 게임이 결국 지능의 경연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실험임을 증명한다. <데블스 플랜>이 기획한 의도는 하나다. 극한의 규칙 속에서 포장되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끝까지 보게 하는 것.


사진 제공 각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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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