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azzling Day


‘가장 이윤지스러운 때는 언제인가요?’ 질문을 받는 순간 이윤지의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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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은 이맘때는 보통 기분이 어때요?

계절 중에 가을을 가장 좋아해요. 딱히 이유는 없지만 학창 시절부터 늦가을이 되면 괜히 기분이 좋고 설 던 것 같아요. 살짝 차가우면서도 깨끗한 가을 공기 특유의 느낌이 있잖아요. 밖에 나오면 그 공기가 딱 느껴지는 날이 있거든요. 그런 날에는 혼자 이상한 상상도 했어요. 빈 유리병을 허공에 대고 공기를 집어넣어서 보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요.(웃음) 다른 계절에 비해 유독 짧아서 더 안달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울 만큼 이때가 좋아요.


얼마 전 연극 <디 이펙트><디 이펙트>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죠. ‘인간 감정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주제가 흥미롭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배우 이윤지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해요.

흠… 뭔가 명료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저에게 특별한 의미였던 것 같아요. 배우는 작품을 만나면 제 나름의 의미와 해석을 달고 해나가는데 <디 이펙트>는 작품 자체의 에너지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만난 것 같아 더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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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최적의 타이밍이었나요?

작년 9월 말에 오랫동안 패널로 출연했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이하 ‘금쪽 상담소’)가 종영을 했어요. 보니까 꼬박 3년을 했더라고요. 단순히 오래 해서 의미 있는 게 아니라 그 방송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고 오은영 박사님의 조언을 들으면서 나와 주변,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이해의 폭도 조금은 넓어졌어요. 제 삶에도 큰 전환점이 된 방송이라 유독 여운이 오래 남았는데, 종영하고 얼마 뒤에 제안받은 작품이 바로 <디 이펙트>예요. <디 이펙트>는 새로운 항우울제 임상 테스트에 참여하는 두 사람과 테스트를 감독하는 박사 둘, 이렇게 네 인물이 등장해 ‘사랑과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듯 대화하는 작품이에요. 저는 극 중에서 테스트를 감독하는 ‘로나 제임스’ 박사 역을 맡았는데, 그 역할을 준비하고 연기하는 동안 마치 ‘금쪽 상담소’의 긴 여정의 마침표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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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금쪽 상담소’가 개인적으로도 큰 전환점이었나 봐요.

맞아요. 매주 나오던 방송 대본의 앞장을 빼놓지 않고 다 모아놨어요. 출연자의 사연과 그날의 얘기, 함께 출연한 패널들의 의견과 제 생각, 또 오은영 박사님의 말까지 하나도 안 빼먹고 적어둔 그 대본 묶음이 저한테는 인생의 바이블이 됐죠. 한 번은 방송이랑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느끼고 대본 묶음을 막 뒤져서 찾아본 적도 있다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고 했지? 하면서요.(웃음) 농담처럼, 죽을 때까지 안 버리고 가보로 물려주겠다고 할 만큼 그때의 경험이 저한테는 큰 배움이 됐어요. 덕분에 이번 역할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고요.


시어 소재 드레스 MISS GEE COLLECTION관람평도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보니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거나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과는 다른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아요. 보통 연극이 끝나면 관객들이 “오늘 공연 너무 잘 봤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데, 이번 작품은 “덕분에 정말 위로받고 가요” 같은 말들을 해주시더라고요. 마치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스스로를 응원하는 듯한 표정으로요. 저는 연기할 때 누군가의 말을 대신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작가의 언어일 수도 있고, 제 해석이 가미된 말일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에서는 책임감이 실리는 대사가 굉장히 많았어요. 배우로서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죠.


배우로서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것과 연극 무대는 어떻게 다른가요?

연기라는 행위 자체는 똑같지만, 매체마다 제각각 다른 고유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게는 그런 기술적인 차이보다는 감정적인 차이가 더 크게 와닿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한 명이지만, 연극은 제가 하는 역할을 누군가가 동시에 맡기도 해요. 물론 원 캐스팅인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요. 대부분의 연극이 더블 캐스팅이다 보니 내 역할에 대해 나만큼 고민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진짜 흥미로운 경험이에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나 그 인물의 생각 같은 것들을 주고받을 때의 희열이 정말 크달까요. <디 이펙트>는 그런 힘도 굉장히 좋았던 작품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튜브톱 드레스 DINT 체인 네크리스 LOST IN ECHO무엇 하나도 소홀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 어딘가 ‘이윤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본 건가요?

하하. 어느 정도는요. 저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소소한 것을 발견했을 때 엄청 큰 행복을 느껴요. 예를 들어서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것보다 집에 가는 길에 아무도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게 훨씬 뿌듯해요. 그래서 평소에 엄청 두리번거리면서 다녀요. ‘오늘의 무언가’를 하나 발견하면 그날은 완전 OK인 거죠.(웃음)


또 스스로 ‘이윤지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처럼 계속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거요. 제 SNS 계정 중에 ‘이윤짓(@leeyoonji_it)’이라고 일종의 서브 계정 같은 게 있어요. 개설한 지는 꽤 됐는데,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소소하게 기록하는 용도로 쓰고 있어요. 좋아하는 책 구절을 직접 읽어서 올려놓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제 오래된 지인들이 그 채널을 유독 좋아하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딱 너 같은 짓을 하냐’고 하면서요.(웃음)


원 숄더 드레스 SELF-PORTRAIT 뱅글 SWAROVSKI사실 언제나 ‘나다움’을 잃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맞아요. 저도 두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제가 원래 좋아했던 게 뭔지 놓칠 때가 있어요. 매일 매 순간 나만 들여다보고 살 수는 없잖아요. 대신 중간중간 한 번씩 스스로 의식적으로라도 묻는 거예요. ‘너 지금 이렇게 가는 거 맞아? 계속 이렇게 가도 괜찮겠어?’ 하고요. 뭔가 아니다 싶을 때는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는 편이에요. 제 나름의 처방전이 그림책 읽기와 운동이에요. 운동은 몸과 마음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그림책은 짧은 스토리 안에서 정돈된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좋아요. 말에 민감한 편이라 그림책을 읽으면 조금 힐링이 되더라고요.


요즘 무의식적으로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뭔가요?

흠, “오히려 좋아”? 내 계획대로 안 되고 예정대로 안 흘러가도 “오히려 좋아” 한마디 툭 하고 털어버리려고 노력해요. 실제로도 예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겼어요. 웬만한 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려고 해요. 나이가 주는 여유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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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연말이에요. 특별한 계획은 세워두었나요?

아마 저희 집 여자 셋이서 여행을 가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이 긴 휴가를 내기 쉽지 않아서 연말마다 본의 아니게 첫째 라니, 둘째 소울이만 데리고 몇 해째 여행을 갔어요. 라니가 내년이면 벌써 5학년이고, 소울이도 일곱 살이니까 이제 제법 ‘여자 크루’ 같은 느낌이 나요.(웃음) 어디로 갈지 지금부터 슬슬 고민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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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Editor 김은향

Fashion Editor 박유은

Photographer 박자욱

STYLING 유아란

HAIR 최종희(우스)

MAKE-UP 김연진(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