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와 머신이 없는 카페


커피가 세계 10대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12가지 천연 재료를 발효해 맛과 향이 뛰어난 대체 커피를 개발한 산스(SANS) 김경훈 대표는 원두가 사라진 미래에도 카페 문화가 계속되길 바란다.




제아무리 음료 시장이 다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고 다채롭게 즐기는 음료는 역시나 커피다. 하지만 커피의 원료인 원두가 멸종위기를 맞으면서 커피는 조만간 고가의 진귀한 취향품이 될 공산이 크다. 대체 커피의 중요한 성공 포인트는 바로 ‘커피는 아니지만 커피의 풍미를 잃지 않는 것’. 전 세계 대체 커피 스타트업은 10곳 남짓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한 대체 커피를 완성해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산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100% 대체 커피를 구현한 스타트업으로 손꼽힌다.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대체 커피를 상용화한 것도 산스가 유일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대체 커피 레시피를 개발한 김경훈 산스 대표는 지금도 더 나은 맛과 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경훈 산스 대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고요. 어떤 계기로 대체 커피를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나요?

어린 시절부터 ‘내가 만든 발명품을 세상 모든 사람이 쓰게끔 하고 싶다’는 꿈을 품어왔어요. 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카이스트에서 주최한 전국 고등학생 논문 대회에서 효모 관련 주제로 상을 받으며 생물학의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이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재료공학(생체재료)을 전공한 뒤 서울대에서 화학생물공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았죠.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물학계의 연구는 항암제나 최첨단 의약품처럼 현실에 적용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는 분야가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됐어요. 그러던 중 커피가 2050년 멸종한다는 논문과 커피를 세계 10대 멸종위기종에 포함시킨 세계자연기금(WWF)의 발표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해온 효모 연구를 기반으로 대체 커피를 개발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석박사 과정을 자퇴하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후 산스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대체 커피를 개발하는 데 4년 가까이 걸렸어요. 세상에 없는 것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커피는 생각보다 훨씬 심오한 세계였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거든요. 일단 바리스타 학원부터 다니기 시작하며 바리스타, 로스터리, 센서리 등 커피 관련 자격증을 전부 취득했고, 국내 한약재 시장을 돌며 구할 수 있는 모든 한약재와 천연 재료를 구해 실험했죠. 기약 없는 시간을 믿고 응원해준 멘토와도 같은 분들은 대체 커피를 개발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어요. 창업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투자를 받기 위해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득 적은 회사 소개서를 여기저기 뿌리는 것이었어요. 그러던 중 김창욱 네이버 스노우 대표님,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님, 김성훈 라인프렌즈 대표님이 제 꿈에 공감해 투자해주셨어요. 눈물 나도록 힘든 순간마다 연구 노트에 “난 반드시 대표님들의 기대를 만족시킨다”라고 빽빽하게 적으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죠.

원두와 커피 머신 없이 커피의 맛과 풍미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내는지 궁금해요.

‘발효’를 통해 커피의 맛과 향을 구현하고 있어요. 발효 공정으로 처음부터 원액 형태로 커피가 만들어지다 보니 머신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이왕 모든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면 기존 커피 산업보다 훨씬 간결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추출 시스템을 설계했죠. 추출기를 통해 에스프레소 원액을 내리는 산스의 방식은 기존 커피 산업이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원두 가격 이외에도 인건비, 바리스타 구인 같은 어려움이 있잖아요. 하지만 산스는 커피 제조 경험이 없는 사람도 누구나 기존 대비 10배 빠른 속도로 같은 퀄리티의 원액을 추출할 수 있어요. 산스는 프랑스어로 ‘없다’는 뜻인데, 이는 커피의 원가뿐 아니라 커피 산업이 안고 있는 모든 부담을 간결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없애겠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어요.


대체 커피는 아직 낯선 개념이에요. 대체 커피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대체 커피는 말 그대로 커피의 대체재라는 뜻이지만, 제가 정의하는 대체 커피는 궁극적으로 미래의 커피 시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커피를 뜻해요. 산스의 슬로건 중 하나가 ‘화성에서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커피’예요. 먼 미래에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게 된다면 커피나무는 당연히 키울 수 없을 거고, 그때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산스가 될지도 몰라요. 커피의, 커피에 의한 지속 가능성이 산스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죠.

대체 커피를 개발할 때 특히 염두에 둔 타깃층이 있을까요?

길게 보면 산스는 전체 커피 시장의 수요를 대체하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지구온난화, 물 부족 등으로 커피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죠. 올해 커피 브랜드들이 일제히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고요. 커피 한 잔에 1만 원인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봐요. 그 순간이 온다면 대체 커피가 커피 시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산스는 이 목표를 위해 하우스 재배가 가능하고 지난 10년간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던 농작물만을 선별해 대체 커피를 개발했어요. 12가지 천연 재료는 어느 나라에서든 쉽게 재배하고 조달할 수 있는 농작물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 커피 가격이 상승할수록 산스는 오히려 더 저렴하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죠.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이 대체 커피를 두 팔 벌려 환영할 것 같아요.

커피 맛과 향을 잘 알고 즐기지만 일시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체재에 대한 요구가 가장 커요. 소량의 카페인에도 불면증이나 두근거림을 겪는 ‘카페인 민감층’, 임산부·수유부· 고혈압·심장질환자 등 의학적으로 카페인을 피하는 ‘특수 상황층’, 헬시플레저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며 설탕·알코올·카페인을 자발적으로 조절하는 ‘웰니스 지향층’, 하루에 커피를 여러 잔 마시는 ‘다회 음용층’은 산스가 현재의 시점에서 타깃으로 삼고 있는 네 카테고리예요. 국내 커피 소비량은 하루 평균 4.5잔에 달할 만큼 높고,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로 인한 건강상의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스페셜티 커피 같다’는 후기가 많아요. 깊은 풍미는 어떻게 구현했나요?

산스는 발효 기반이라 온도, pH, 효모 등의 발효 조건만 변경하면 무궁무진한 맛과 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반적인 맛을 구현할 수도 있었지만, 대체 커피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일 커피 애호가와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기 위해 복합적인 스페셜티 커피 맛에 집중했죠. 그 전략이 적중해 인지도를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고요. 올 12월에는 보다 대중적인 맛과 향을 구현한 버전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첫 번째 매장으로 ‘익선동’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산스가 글로벌 소비자를 타깃으로 설계된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첫 매장의 위치를 선정할 때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지역을 1순위로 꼽았어요. 외국인들이 대체 커피의 성지로 여겨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대표님도 원래 커피를 즐겼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연구원 시절까지 매일같이 밤을 새우다 보니 하루에 두 잔 이상씩 마시는 커피 덕후였어요. 커피 없이 아침을 시작하면 찌뿌둥했고 밤에도 남은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커피를 몸속에 들이부었죠. 하지만 산스를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체 커피를 매일 마시게 되었고, 어느 순간 커피를 갈구하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너무 신기했죠. 지금은 아침에 출근하면 산스의 웨이크 포뮬러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 전에는 산스의 레스트 포뮬러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산스가 일상이 된 제 모습을 발견하면서 대체 커피에 더욱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죠.


커피는 맛뿐 아니라 기분 전환, 집중력 등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즐기는 사람이 많아요. 대체 커피에도 이런 효과가 있나요?

원두 대신 12가지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산스는 항산화 효과는 물론, 원료 각각의 다양한 효능까지 담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산스를 커피라고 생각하지 않고 커피 맛을 완벽히 구현한 건강한 에너지 드링크로 포지셔닝하고 있어요. 커피를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거나 창의력이 샘솟는 것은 플라시보 효과이기도 해요. 인류에게 가장 익숙한 음료인 커피의 이러한 효과까지 구현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죠.

산스는 제로 카페인, 대체 카페인, 슬립 부스터의 세 카테고리로 음료를 선보여요. 슬립 부스터는 우리가 커피에 기대하는 효과와 정반대인데, 어떤 이유로 만들게 됐나요?

앞서 말했듯 산스를 에너지 드링크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에 없는 다양한 기능성까지 담아내고자 했어요. 기존의 커피와 같은 각성 효과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대체 카페인 메뉴를 선보이는 동시에 ‘잠이 잘 오는 커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로 슬립 부스터를 선보이고 있죠. 앞으로 피부 건강에 도움이 되는 뷰티 라인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커피 그 이상을 제안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산스를 찾는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이 궁금해요.

부모님이 3살, 5살 남짓한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게 대체 커피라는 거야”라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곤 정말 신기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친구들도 수십 명이 우르르 와서는 선생님이 수업 대신 산스에 가보라셨다며 음료를 마시고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요. 이처럼 산스는 기존 커피가 소화해내지 못한 새로운 소비자 풀에 접근하고 있어요. 11월 오픈할 스타필드 고양점에서는 ‘키즈 메뉴’도 선보일 계획이죠. 키즈 커피라니, 기존에 없던 개념이죠? 앞으로 더욱 다양한 소비자들이 더 친숙하게 산스를 접하고, 산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 팀원들과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산스를 통해 세상에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나요?

산스는 프랑스어로 ‘없다’를 뜻하면서도 중국어로는 ‘3’을 의미해요. 저는 산스가 글로벌 카페 역사에 제3의 물결을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 확신해요.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인류의 소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다방과 빵집, 지금은 카페에서 친구와 연인을 만나잖아요. 훗날 원두가 사라지더라도 카페라는 사랑스러운 문화가 계속되길 바라요. 100년 후에도 커피를 일상에서 건강하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완벽한 대체 커피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예요.


📷 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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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