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s of Past & Future
시대의 요구와 부름에 따라 시장은 다른 얼굴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왔다.
도시 건축으로 바라본 시장의 가능성
©Ossip van Duivenbode 2014년 문을 연 네덜란드의 마르크탈(Markthal)은 도시 재생 건축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설계를 맡은 세계적인 건축가 위니 마스(Winy Maas)는 ‘도시의 기능은 분리되지 않을 때 가장 활기를 띤다’는 믿음으로 시장, 식당, 주거, 사무 공간을 하나의 아치형 돔 안에 엮어냈다. 실제 일부 아파트에서는 창을 통해 시장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돔 안에 들어선 가게들은 원래 지역의 노천시장 상인들이 자리를 옮겨 만든 것이다. 덕분에 입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며 신선한 식재료와 음식을 사고 즐기는 장면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천장을 가득 채운 초대형 벽화 ‘풍요의 뿔(Horn of Plenty)’이 이곳을 하나의 거대한 포토 스폿으로 만든다.
대안적 가치를 판매하는 마켓

독일 베를린의 더 그린 마켓은 물건 대신 지속 가능성을 파는 곳이다. 2014년 시작된 마켓은 옛 공장 부지나 도시의 빈 공간을 무대로 비건과 친환경 문화를 전면에 펼쳐낸다. 마켓에 들어서면 유기농 채소와 채식 요리, 천연 화장품과 업사이클링 패션 아이템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전통적인 시장이 먹거리 중심의 풍경이라면, 이곳은 ‘살아가는 방식’을 전시하는 무대에 가깝다. 초기에는 베를린 특유의 대안 문화에 낯설어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럽 각지에서 온 방문객과 로컬이 섞여드는 작은 축제가 되었다. 음악과 워크숍, 강연도 함께 기획하고 있으며 그 한가운데서 비건 요리를 맛보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경험한다.
도축지에서 현대적인 문화 공간으로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는 원래 마장동처럼 도축장과 정육 공장이 빼곡히 들어선 고기 도매시장이었다. 20세기 후반 산업 기능이 사라지며 쇠락했지만, 1990년대 이후 하이라인 공원까지 레스토랑과 푸드홀, 갤러리가 들어서며 새로운 시장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고기 대신 미식과 패션, 문화가 거래되는 공간이다.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과거의 창고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안에서 현대적인 푸드 마켓과 다이닝이 이어지며 도시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북유럽의 팬트리
덴마크 코펜하겐의 시장 토브할렌 (Torvehallern)은 스스로를 ‘슈퍼 마켓’이라 칭한다. 이는 북유럽의 다양한 식재료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 2011년 노르포르트역 앞 옛 중앙시장 부지를 재개발해 문을 연 이곳은 투명한 유리와 강철로 지어진 두 동의 파빌리온 안에서 장보기와 미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게 했다. 내부에는 60여 개 점포가 들어서 있는데, 스칸디나비아 주변 바다의 생선과 유기농 채소, 제철 베리와 손수 만든 빵까지 현지 식재료가 빼곡히 자리한다. 개장 초기에는 ‘너무 세련돼 전통시장의 서민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은 도시의 맛과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광장으로 자리한다. 시장에서 북유럽식 오픈 샌드위치인 스뫼레브뢰는 꼭 맛보아야 할 메뉴다.
모두를 위한 식탁
스페인 마드리드의 메르카도 데 산 미겔(Mercado de San Miguel)은 1916년 철골과 유리 구조로 세워진 전통시장이다. 오랫동안 주민들의 생활 장터로 기능했으나 20세기 후반 쇠락을 겪은 뒤 2009년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열었다. 외형은 그대로 두되 내부는 장 보는 공간을 넘어 먹고 마시는 경험에 집중하도록 바꾸었다. 테이블 좌석보다 스탠딩 바가 중심을 이루며 이베리코 하몽과 올리브, 타파스, 파에야 등 스페인 각지의 미식을 선보인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밤이 되면 자정까지 문을 여는 스탠드 앞에서 현지인들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사교의 무대를 만든다. 이곳은 전통시장이 ‘가스트로노미 센터’로 전환된 대표 사례이자 마드리드의 미식을 집약한 랜드마크다.
세계 미식 수도의 주방

Lyon Tourist Office‘프랑스 미식의 성전’이라 불리는 리옹의 레 알 드 리옹 폴 보퀴즈(Les Halles de Lyon Paul Bocuse). 1859년 처음 문을 열었고, 1971년에는 거장 셰프 폴 보퀴즈의 이름을 붙이며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2006년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거쳐 현대적인 푸드 마켓으로 발돋움한 뒤 리옹이 ‘세계 미식의 수도’라 불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3000㎡가 넘는 실내 공간에는 50여 개의 점포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샤르퀴트리와 치즈, 굴과 게 같은 해산물, 프랄린 타르트 같은 리옹 특산 디저트까지 프랑스 각지의 장인들이 선보이는 식재료, 음식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시장, 브랜드가 되다
이탈리아 피렌체 산로렌초 지구에 자리한 메르카토 첸트랄레(Mercato Centrale)는 19세기 말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가 설계한 철골과 유리 구조물에서 출발했다. 한때 쇠락했던 이 시장은 2014년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2층을 푸드홀로 꾸미고 장인과 셰프들이 운영하는 스탠드를 들여 전통적 시장의 풍경에 현대적 미식 경험을 더한 것.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시장이 더 이상 피렌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마, 밀라노, 토리노로 확장된 뒤 해외 지점까지 이어지며 메르카토 첸트랄레는 하나의 이탈리아 푸드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각 지점은 현지 장인과 생산자를 중심에 두되 ‘시장=브랜드 공간’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다.
전통이라는 지붕 아래
1897년, 부다페스트 도나우 강변에 문을 연 그레이트 마켓 홀은 헝가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이다. 철골과 유리 지붕을 얹은 신고딕 양식 건축은 완공 당시 도시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전쟁과 화재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시장은 1990년대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과거의 외관을 되살리되 편의성을 더해 다시 문을 열었다. 입구 쪽에는 고추와 파프리카를 산더미처럼 쌓아둔 가판이 시선을 붙잡고, 내부로 들어서면 굴라시나 랑고시 같은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해 현지인과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 셔터스톡(Shutterstock), 언스플래시(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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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유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