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기억되는 테이블


전공자가 아닌, 표현자로서의 요리. 플레이버 다이닝 김도연 대표가 완성한 케이터링 테이블 위에는 늘 창작의 긴장이 흐른다.





금속공예와 주얼리 VMD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요리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들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VMD는 브랜드의 콘셉트에 맞춰 공간을 꾸미고 제품이 돋보이도록 연출하는 일을 해요. 그러다 취미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단순히 ‘맛있는 걸 먹는 것’뿐 아니라 음식을 차리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음식에 어울리는 그릇과 커틀러리, 테이블웨어까지 조화롭게 맞추는 걸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한식을 먹을 때는 한국적인 센터피스를 만들고 어울리는 그릇을 세팅하는 식이죠. 그런 테이블 연출에 대한 관심이 점점 깊어졌고, 결국 ‘일로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제 작업실을 만들었죠. 이전에 해오던 공예 작업처럼 요리도 저에게는 작업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아요.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케이터링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내 이름을 건 다이닝을 서른 전에 열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목표를 세우고 요리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친구 부탁으로 하게 된 케이터링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꿨어요. 평소에 3~4인의 소규모 요리만 하다가 처음으로 30인 분량의 요리를 준비하게 된 거죠. 플레이트도 테이블도 완전히 다른 스케일이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제가 준비한 음식을 즐기는 장면에서 굉장한 희열을 느꼈어요. 공간적인 감각이나 규모, 그날의 분위기, 음식이 펼쳐지는 순간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케이터링에 마음이 끌리게 됐죠.


 

케이터링은 맛과 재료의 조화는 물론, 음식의 형태와 디자인, 플레이팅까지 종합적인 완성도를 요하는 작업이에요. 그중에서도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저는 케이터링이 단순히 이벤트 한편에 놓인 식사가 아니라 하나의 아트처럼 존재하길 바라요. 그래서 모든 요소가 다 중요해요. 맛, 비주얼, 플레이팅, 콘셉트 모두요. 각각의 중요도가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음식’이기 때문에 저는 ‘맛’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있어요. 음식의 본질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주얼만 신경 쓰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에요.


 


리바이스의 데님 텍스처를 표현한 쿠키, 진주로 섬세하게 장식한 타사키의 디저트처럼 예술적인 디자인과 플레이팅으로도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저는 일 년에 여섯 번 정도 해외 도시를 여행하는데, 그중에서도 현지 식문화를 경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예를 들면, 남프랑스 시골 마르셰에서 맛본 라벤더 디저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그런데 이후에 브랜드와 함께 ‘남프랑스’를 테마로 컬렉션을 진행하게 되면 그때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메뉴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식이죠. 검색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디테일이 실제 경험에서는 나오거든요. 그리고 저는 단순히 현지 분위기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성이나 감성을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표현하려고 해요. 그래서 시각적으로도, 맛의 디테일에서도 감도가 느껴질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국내에도 케이터링 문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파티나 리셉션, 홈 파티 등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경험한 해외 케이터링 문화 중 인상 깊었던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기억에 남는 건 작년에 호주에 사는 친구 가족의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예요. 요즘 한국에서도 결혼식을 코스 요리와 함께 진행하긴 하지만, 거긴 좀 달랐어요. 단순히 코스 요리를 먹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반나절 넘게 파티를 이어갔고, 그 속에 케이터링이 정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거든요. 테이블 위에 음식을 일률적으로 세팅해놓는 게 아니라, 서버들이 색다른 모양의 트레이에 음식을 담아 사람들에게 직접 나눠 주는 방식이었어요. 춤도 추고 대화도 나누면서 중간중간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죠. 한국에서도 결혼이라는 특별한 날을 이렇게 유쾌하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서 간단히 식사할 때도 미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데, 일상 속에서도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플레이팅 팁을 소개해주세요.

스페인 여행 중 한 야외 식당에 갔을 때였어요. 스파클링 와인 ‘까바’를 주문했는데, 얼린 청포도 한 알이 담겨 나왔더라고요. 궁금해서 물어보니, 얼음은 와인의 맛을 희석시킬 수 있어서 대신 얼린 청포도를 넣는 거래요. 와인을 마시다가 마지막에 청포도를 안주처럼 먹는 거죠. 너무 간단한 디테일이지만 낭만도 있고 실용적이기도 하고, 그 순간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저도 집에서 청포도를 먹다 남으면 알알이 떼어 냉동실에 넣어두곤 해요. 여름에 탄산수나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을 마실 때 한두 알 넣으면 시원하고, 플레이팅 요소로도 예쁘고요.


 

플레이버 다이닝의 케이터링은 단순히 요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공간 연출이자 예술 작업처럼 느껴져요. 항상 지켜오는 케이터링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맛있는 음식을 기본으로 하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까지 반영해서 테이블이라는 하나의 공간 위에서 종합적인 감각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제가 지향하는 작업이에요. 제 철학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맥락 있는 아름다움’이에요. 단순히 예쁘기만 한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등 존재의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케이터링이 요리를 매개로 한 일회성 예술에 가깝다고 느껴요. 손님들이 테이블 앞에서 먼저 ‘와’ 하고 감탄하고, 맛으로 기억하고, 그 경험이 감정으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예요.


 


지금까지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터링 작업을 하나만 꼽는다면요? 

나이키와 지드래곤이 협업한 스니커즈가 출시됐을 때의 케이터링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당시 캠페인 콘셉트도 굉장히 뚜렷했어요. ‘뉴토피아’라는 테마에 데이지꽃이 핵심 시그너처였죠. 저는 캠페인 테마를 케이터링 테이블 위에 온전히 구현해보고 싶었어요. 테이블을 마치 꽃밭처럼 식물로 가득 채워서 ‘풀숲을 헤치며 음식을 찾아가는 경험’이 되도록 연출했죠. 데이지 꽃잎이 하나 툭 떨어진 모습을 형상화한 디저트도 만들었고요. 또 허브를 넣어 구운 쿠키를 나무에 매달아서 손님들이 직접 따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날의 분위기가 마치 진짜 유토피아처럼 느껴졌고, 현장에 온 분들도 굉장히 즐거워했어요. 저에게도 하나의 실험이자 시도였던 작업이라 유독 기억에 남아요.


 

예전에는 케이터링이 뷔페나 행사 음식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브랜드, 전시, 음악 등 다양한 문화와 결합된 ‘감각의 요리’로 진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케이터링은 어떤 방식으로 더 확장될 수 있다고 보나요?

저희 플레이버 다이닝이 작업하는 케이터링은 브랜드, 전시, 쇼케이스처럼 특정 목적을 가진 행사가 많아요. 그런 작업들을 통해 케이터링이라는 분야가 훨씬 더 다양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고 느껴요. 브랜드의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거죠. 저는 케이터링이 브랜드를 더 잘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보면 음식을 매개로 한 마케팅, 혹은 브랜드 세계관의 연장선이 되는 거예요. 저는 그런 방향으로 케이터링이 더 넓어지고, 더 강력한 감각적 매체로 확장되리라 보고 있어요.


 

가장 아름답고 잘 짜인 케이터링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요?

브랜드나 주제 혹은 특정 페르소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엔 비주얼에만 치우치거나 음식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케이터링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해요. 음식, 테이블, 공간, 분위기 중 하나라도 너무 튀거나 부족하면 전체적인 경험이 어그러지거든요.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모든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케이터링이에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나 추구하는 목표가 있나요?

제 안에 생긴 꿈들 중 하나는 파리에서 케이터링을 해보는 것이에요. 저는 파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감각적인 케이터링이 가능한 도시라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쇼도 많고, 패션 브랜드도 다양하고, 그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니까요. 작은 이벤트여도 상관없어요. 그 자리에 우리 팀이 함께하고, 우리만의 감각으로 풀어낸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케이터링은 늘 낯선 공간에서 시작되고, 늘 새로운 콘셉트를 저만의 감각으로 해석해내야 해요. 매번 창작의 고통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훨씬 더 짜릿하거든요. 그걸 경험하는 사람이 누구일지는 몰라도, 제가 만든 음식이나 테이블을 보고, 즐기고, 기억해주는 것이 저에겐 제일 큰 동기부여예요. 앞으로도 한 번도 안 해본 브랜드와 계속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 브랜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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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