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의 도시, 안동 리부트


고요하던 안동 원도심이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양반의 도시’ 안동에서 비속어가 오가는 스탠딩 코미디가 열린다.

안동소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 난 로컬 맥주 ‘경화수월’도 등장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문화기획사 이공이공의 김태욱 대표가 있다.

그는 조용한 도시 안동을 조금씩 흥미로운 곳으로 바꾸어나간다.



김태욱 대표는 안동에서 나고 자라 타지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지역 청년이다. 의료경영을 전공했지만, 25세에 첫 창업을 시작으로 문화 기획자의 길로 들어섰다. 


10여 년 전 안동으로 돌아오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미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안동 최초의 합법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길거리 음식도 청년 문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경험은 지역 문제 해결과 문화 기획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독립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다 2020년,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뜻을 모아 주식회사 ‘이공이공’을 설립했다. 이공이공은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익을 공유하는 문화기획사’라는 뜻이다.


오는 길에 보니 평소 조용하던 음식의 거리가 분주하더라고요.

원도심을 중심으로 ‘다시 안동 ON’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 저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축제죠. 안동에 큰 산불이 난 이후 처음 개최하는 지역 행사라 의미가 더 커요. 북문시장 막걸리 축제, 음식의 거리 맥주 축제, 문화의 거리 공연 예술 무대가 열릴 예정이에요.


예전에는 원도심에서 이런 축제가 열리지 않았죠?

맞아요. 올해로 음식의 거리에서 축제를 연 지 9년째예요. 도시 재생 공모전에서 5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시작한 ‘웅부객주 로드 페스티벌’이 이제는 약 1억 원 규모의 원도심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죠. 첫 회에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먹거리를 팔고 마켓을 운영했지만, 이듬해부터는 상인들과 함께하는 축제로 확대되었어요. 지금은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릴 만큼 지역에 깊숙이 뿌리내렸어요.


엄청 흥한 축제가 됐네요. 하지만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초창기엔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원도심 축제를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을 때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는 취지로 생맥주 무한 리필을 제안했죠. 그때는 술을 공짜로 주면 누가 돈 주고 사 먹냐며, ‘미쳤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래도 ‘3년만 해보자’고 설득했고, 결국 사람도 모이고 매출도 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3년 차부터는 구매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1만 원당 한 잔을 제공하는 식으로 바꿨어요. 예를 들어 3만 원짜리 안주를 주문하면 맥주 세 잔을 제공하는 식이죠.



요즘 안동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안동이 뜨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나요?

절반은 맞는 말이죠. 양양, 대전처럼 메가 브랜드화된 것은 아니고, 경주나 전주처럼 관광객들이 물밀 듯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안동의 매력이 그렇듯, 잔잔하게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슬픈 일이지만, 최근의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고 문화재도 훼손됐어요. 관광도 전부 멈춰버렸고요.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안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많은 인플루언서의 방문과 ‘기부 여행’이 이어지면서 아이러니하지만 안동이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했던 안동이 꽤 북적이는 느낌입니다.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 서는 풍경도 보이고요.

산불 이후 기부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의 응원과 방문 덕분에 점차 활기를 되찾는 중이에요. 맛집이나 명소로 불리는 앵커 스토어를 비롯해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봉정사 같은 세계유산이나 고택, 원도심까지 관광객이 조금씩 다시 늘고 있어요. 요즘엔 전에 없던 신선한 공간이나 젊은 크리에이터들도 눈에 띄고, 지자체의 마케팅 노력도 효과를 보는 것 같고요. 안동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세대 교체, 관광 트렌드 변화에 따른 영향도 조금은 있겠죠. 안동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도시이기에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 믿어요.


안동의 관광객 증가에는 KTX 개통이 큰 역할을 했겠죠?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2시간이면 도착하니까요.

확실히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수도권에서 안동까지 오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지역민들이 서울을 오가는 부담도 줄었죠. 특히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내국인은 자가용으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지만, 외국인은 교통 인프라에 민감하니까요. 다만 안동은 관광지 간 이동 거리가 먼 지리적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불편하지만 만족도 높은 여행, 제대로 된 전통문화 체험이 가능한 ‘찐전통’스러움을 안동의 여행 콘셉트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안동에 다녀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동에 반했다고 해요. 사람들이 안동의 어떤 점에 매료되는 것 같나요?

안동은 깊이 보면 색다른 곳이에요. 잔잔하고 고즈넉해서 재미없게 느낄 수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바라보면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과 문화유산,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여느 도시와는 다른 감동을 받을 수 있어요. 안동에는 만들어진 전통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 올린 전통과 역사, 문화가 있죠. 양반의 고장이라 재미없는 곳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반전 매력을 지닌 포인트가 많아요. 투박한 듯 친절한 사람들과 화려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고요. 안동은 가양주, 막걸리, 담금주, 증류주(안동소주, 진맥소주 등), 맥주, 와인 등 모든 주종을 생산하는 지역인 만큼 술과 식도락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 확실히 매력이 있죠.


문화기획자로서 안동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원도심 프로젝트는 규모와 상관없이 여전히 애착이 가는 작업이에요. 지금은 제 손을 떠났지만 2021 세계유산축전에서 처음 시도한 도산서원 야간 개장도 저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당시 도산서원 공연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는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밤에 찍은 사진이 없더라고요. ‘서울의 궁궐은 야간에도 개방하는데 왜 안동의 세계유산은 밤에 못 들어갈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왜 굳이 밤에 개방해야 하느냐는 재단 측의 반대도 있었지만, 설득 끝에 야간 개장을 성사시켰고 첫 회에 대박이 났죠. 지금은 안동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 잡았어요. 이후 영주, 상주까지 야간 개장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죠. 3~5년의 장기 플랜으로 계획한 프로젝트였는데, 1년 만에 손을 떼게 되어 아쉬움이 남아요.



일선에서 일하는 문화기획자의 눈에는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이 보일 것 같아요.

축제를 방문자 수로만 평가하는 관행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예요. 사람만 많이 오면 된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죠. 이제는 모객에 목숨 거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하고 축제 퀄리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그리고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예요. 저희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안락’의 공간을 확보하고 조성하는 데만 4억 원이 넘게 들고 대출도 상당했어요. “그 돈으로 왜 이런 일을 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안락은 지역의 시민 의식을 바꾸는 출발점이었어요. 안동에서 돈 내고 공연을 본 적이 있나요? <캣츠>같은 대형 공연이 아니면 돈을 내고 관람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1만 원을 내고, 다시 돌려받고 공연을 보는 식이죠. 그러니 지역 예술인도 자생력을 잃고, 시민들도 공연은 무료로 보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고요. 그래서 ‘무조건 돈 내고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를 회복시키자는 목표로 안락을 운영하고 있어요. 수익과 상관없이 말이죠. 마술사가 한 사람도 없는 안동에서 마술쇼를 열고, ‘양반의 고장’ 안동에서 비속어가 오가는 스탠딩 코미디도 해봤죠. 원도심에 다양한 재생 공간들이 늘어나 더 재밌어지면 좋겠어요.


새로운 술도 계속 출시하던데, 문화기획사에서 술을 만드는 이유는 뭔가요?

주로 지역 양조장들과 협업해 OEM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사실 한 병 팔아야 몇 천 원 남을까 말까지만. 그래도 술을 계속 만드는 이유는, 안동소주 외에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술도 만들 수 있고, ‘경화수월’처럼 전국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술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예요. 여전히 안동의 베스트셀러 여행 기념품은 하회탈, 최고의 술은 안동소주지만요.(웃음) 앞으로는 더욱 다양해져야죠.


안동에서 일하며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안동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체감할 때마다 자랑스러워요. 올해는 전국의 문화기획자들이 선정하는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에서 전남 광주의 문화기획자와 제가 선정되기도 했어요. 내일의 기획자 어워드는 젊은 기획자들을 응원하자는 취지로 선배 기획자들이 주는 상이에요. 나라에서 주는 것은 아니라 공신력 있는 상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어떤 상보다 의미가 있어요. 기획자들이 직접 선정해준 것도 영광이고, ‘김태욱’이라는 이름이 전국의 기획자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도 무척 뜻깊었어요.


안동 여행 팁을 알려준다면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조금 더 넓고 깊게 도시를 바라봤으면 해요. 잠깐 들렀다 가는 게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담은 맛있는 음식과 술을 여유롭게 즐기길 바랍니다. 안동의 로컬들이 즐겨 찾는 노포 위주로 여행하는 것도 좋고요. 세계유산을 비롯해 곳곳에 숨겨진 문화재와 비경을 만끽하려면 하루로는 부족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도산서원과 월영교, 만휴정이에요. 특히 도산서원에서 시사단 쪽을 바라보면 절로 사색에 잠기게 되거든요. 만휴정에서는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의 물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맑아져요. 일정을 여유롭게 잡으라고 권하는 이유죠. 안동은 풍경이 아름다우니 계절별로 한 번씩 들르는 것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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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