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패션 그리고 제임스
호주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다 서울로 건너온 제임스.
그는 사람들의 패션을 통해 낯선 도시의 욕망,
그들이 품은 문화를 들여다본다.
한국에서 그가 발견한 에너지는 무엇일까.
단순히 ‘트렌디하다’는 납작한 감상을 넘어서는 한국 패션 신의 변화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요즘 사람들의 갈망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호주에서 패션 에디터로 활동하던 제임스 다익스(James Dykes, 이하 제임스)는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시기에 서울에 정착했다. 낯선 도시,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신을 보여줄 새로운 방식을 고민했고, 인스타그램에 스타일링 작업을 올리는 작은 시도부터 다시 시작했다. 꾸준히,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금 그는 패션 인플루언서로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그 중심에는 ‘나답게 입는 법’이 있다. 서울에서 찾은 자신만의 스타일, 그리고 일상과 스타일 사이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팬데믹 시기에 한국으로 왔다고요. 낯선 도시에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시작한 과정이 궁금하네요.
처음 서울에 온 시기가 딱 팬데믹 때였어요. 아내의 서울 발령을 계기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함께 한국으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처음 6개월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새로운 기회가 금방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좋아하는 스타일링 작업을 소개하면서 저를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했죠. 인플루언서를 목표로 했던 건 아니고, SNS 툴을 배우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이 열린 것 같아요.
한국에 오기 전 호주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호주에서는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남성복 중심의 패션 에디터로 활동했어요. 광고 클라이언트들과 협업하거나 <10 Men> 같은 매거진에 기고하기도 했죠. 그리고 ‘버추얼 맨(Virtual Man)’이라는 디지털 매거진을 직접 만들었어요.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 ‘@james_virtualman’도 그 이름에서 따왔어요.
한국에 대한 첫인상과 지금 느끼는 매력은 어떻게 다른가요?
다른 외국인들처럼 저도 음악과 뷰티를 통해 한국을 접했어요. 한국은 언제나 에너지 넘치고 흥미진진한 곳으로 느껴졌죠. 그 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다만 지금은 더 소소한 일상 속의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커요. 시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고르거나 동네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나는 순간들요. 또 패션 바깥의 경험들, 작은 도시로 떠나는 여행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깊게 기억에 남아요.
한국 패션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느낀 한국만의 분위기가 궁금해요.
한국은 디자이너들이 대담하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생산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소비자들도 새로운 브랜드나 트렌드에 굉장히 열정적이죠. 이런 분위기 덕분에 한국 패션은 빠르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반면 호주는 패션 산업 자체가 좀 더 작고 에너지도 한국과 차이가 나요.
한국에서 일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화적 차이도 경험했나요?
네, 물론이죠. 언어는 여전히 쉽지 않고, 일하는 문화도 많이 달라요. 특히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게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한국인들이 보여주는 열정과 목표를 향한 집중력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한국어 공부도 하고 있다던데요. 가장 어려운 점이 뭔가요?
모든 게 어려워요.(웃음) 그동안 틈틈이 공부해왔지만, 제가 좀 완벽주의라 실수할까 봐 말하는 게 늘 조심스러워요. 특히 문법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배우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OOTD가 무척 인상적이에요. 컬러도, 패턴도 자유롭게 활용하던데, 스타일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궁금해요.
사실 스타일링은 경험이 쌓일수록 직관적으로 하게 되지만, 여전히 실험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항상 ‘균형’을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강렬한 프린트의 팬츠를 입으면 단순한 상의를 선택하고 컬러나 액세서리로 작은 포인트를 더하는 식이죠. 그런 디테일이 룩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주니까요.
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여행이 가장 큰 영감이에요. 새로운 도시에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스타일을 보는 것만큼 창의력을 자극하는 건 없어요. 결국 가장 매력적인 건 ‘자기다움’이 묻어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깜짝 놀란 트렌드나 스타일이 있나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정말 놀랐어요. 모든 ‘잇 아이템’을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꽤 있었고요. 그런데 요즘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정말 흥미로워요. 제가 패션 콘텐츠를 만들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해요. 하지만 패션이 때로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쉽게,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저는 늘 스타일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패션에는 정답이 없고,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패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다 보면 다채로운 브랜드를 접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한국 브랜드나 디자이너를 꼽아본다면요?
정말 많아요. 개인적으로 애프터프레이(AfterPray)는 컬러 활용이 탁월하고 실루엣이 멋져서 즐겨 입어요. 에스티유(STU)는 유럽식 미니멀리즘에 한국적인 감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늘 눈길이 가요. 우마뭉(Umarmung)은 1990년대 미니멀리즘 무드를 굉장히 세련되고 정제된 방식으로 풀어내는 브랜드라 좋아하고, 미얼리 메이드(Merely Made)는 글로벌한 감각이 묻어나서 개인적으로도 스타일링할 때 자주 참고해요. 그리고 시스템(System)은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죠. 퀄리티나 디자인 모두 언제나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줘서 믿고 보는 브랜드예요.
가장 좋아하는 한국 패션 아이콘은 누구인가요?
자신만의 정체성이 확고한 아티스트들을 정말 존경해요. 그중에서도 코드쿤스트가 특히 떠오르네요. 그의 스타일은 일부러 멋을 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멋있고, 무엇보다 완전히 자신만의 색이 담겨 있어서 늘 인상적이에요.
한국에서 주로 쇼핑하는 장소나 플랫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주로 한남동에서 쇼핑을 하고, 여의도 더현대서울도 자주 가요. 특히 지하층에 로컬 디자이너 브랜드나 크리에이티브한 팝업이 많아서 항상 새로운 영감을 받아요. 저는 직접 매장에 가서 옷을 만져보고 입어보고, 브랜드의 분위기를 느끼는 걸 좋아하거든요.
패션 인플루언서로서 가장 보람 있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팔로어들을 만나는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직접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SNS에서 소통하죠. 그럼에도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의미 있어요. 처음부터 저를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좋은 조언이나 추천, 따뜻한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힘이 나고, 유쾌한 댓글에 하루가 밝아지기도 해요. 그래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모든 댓글에 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의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요?
제 스타일은 예측 불가능할 때가 많아요. 기분파거든요! 어떤 날은 미니멀하고 깔끔하게 뉴트럴 컬러의 옷을 입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대담한 프린트나 강렬한 색을 즐기기도 해요. 옷을 통해 다양한 제 모습을 탐색하는 걸 좋아해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스타일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스타일링 작업부터 TV 방송, 라디오 출연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저를 도전하게 만드는 도시예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어요.
한국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제 제게 한국은 ‘집’이에요.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지만, 지금은 일상과 관계 그리고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만약 한국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가능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창의성, 사람들과의 연결, 성장 등 모든 게 활짝 열려 있는 곳이에요. 무엇보다 한국분들이 저를 정말 따뜻하게 받아줘서 늘 감사해요. 앞으로도 커뮤니티 안에서 더 많은 연결을 만들고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정말 놀랐어요.
그런데 요즘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정말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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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Courtesy of 제임스 다익스